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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tGPTを利用し、要約された質問です(原文:韓国語で和夫一家殺害事件を伝えたい。)

韓国語で和夫一家殺害事件を伝える

このQ&Aのポイント
  • 韓国で有害図書の指定を受け事実上発禁処分となった本があります。その本は、韓国語で和夫一家殺害事件を伝えています。
  • 和夫一家殺害事件は、朝鮮に移り住んだ日本人が凄惨に殺害されたという実話です。和夫は朝鮮人を愛し、孤児まで育てた善人でした。
  • また、金完燮さんは日本と韓国の関係について語っており、反日教育の中断と日本人の奉仕について知るべきだと訴えています。ハングル文字でキム・ワンソプさんの思いを伝えることが求められ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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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me#150333
noname#150333
回答No.1

체험자는 돈完燮(김·【완소푸】)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실화의 책은, 한국에서 유해 도서의 지정을 받아 사실상발행금지처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돈完燮(김·【완소푸】)씨 「나는 순수한 한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한심하고, 얏으로 죽여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왜 일본의 만행은 파해치는데도, 자기들이 더러운 이기마음과 용렬한 냄비근성에는 눈을 감는 것인가? 」 일제시대, 조선에 옮겨 산 일본인 안에는, 분명히 훌륭한 사람들도 많았다. 공무원이었던 가즈오(和夫)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서 조선에 부임된 것이다. 평소로부터 인정미가 두터웠던 가즈오(和夫)는, 소작료를 수확 전체의 10분의1라고 해서 마을사람들을 가족과 같이 간주해서 기쁨도 슬픔도 모두 했다. 가난한 소작인이 식료가 없으면 울듯이 애원하면, 기뻐해서 먹는 것을 나누고, 마을에서 누군가의 장례가 있으면, 가족총출동으로 급히 달려 오고, 식사의 준비는 물론, 스스로 통곡하고,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가질 것도 있었다. 이렇게, 가즈오(和夫)는 인간에의 따뜻한 애정을 가진 참된 인간이었다.  또, 가즈오(和夫)는 가까이 갈 곳이 없는 고아가 있으면, 데리고 돌아가서 돌보아 주고 있었지만, 어느사이에 사설고아원규모에까지 늘어나버렸다. 그렇지만, 가즈오(和夫) 부부는 이것들 고아들을 가족과 같이 사랑하고, 스스로 기꺼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칭했다. 가즈오(和夫)의 가족은, 평소, 이렇게 조선인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의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한 1945년8월15일, 자기들이 기른 조선인 고아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그 날, 조선인이 왔다. 우리아이와 같이 키우고, 도쿄(東京) 제국대학에 유학까지 시킨 A의 주도 아래로, 그의 집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고, 성인한 청년들이, 도끼와 괭이, 삽(scoop)을 손에, 가즈오(和夫)의 밑에 밀어 닥쳤다. 그 때 현장에 있었던 돈【손스】군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가즈오(和夫):이어서 이런 것을, 어린이들. A:【좃파리】!  일본에 없어져라, 없어져 ち앞. 가즈오(和夫):내가, 너들에게 어떤 틀림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너들, 전부가 나의 아들이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며, 너들의 부모다. 너들의 조국이 풀어진 것은, 나도 평소로부터 바라며 기다려 온 것이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의 날에, 아무튼 흉기를 가져서 나가 있는 곳에 몰려들거나 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너들을 그런 식으로 교육한 기억하기는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로 슬픈 것이다. 조선의 아들들. A: 의미심장한 눈짓을 B에 보낸다 B: 죽을 수 있고, 【좃파리】, 【싯파루노마】. 사이머리 넣지 않고 괭이가, 가즈오(和夫)의 후두부에 내리쳐진 것임과 동시에, 수많은 삽(scoop)과 도끼가 그의 몸을 가리가리 잡아 찢기 시작했다. 이 때, 가즈오(和夫)의 아내가 참을 수 없고 뛰어 나와 왔다. 그것까지 다물고 있었던 C는, 가즈오(和夫)의 아내를 보고, 그녀가 긴 머리를 움켜 쥐고, 정원이 후미진 바에 질질 끌어 갔다. 그리고 어떻게 13명이 달려들어서, 그저 일주일간전까지 어머니로서 공손하게 시중들고 있었던 그녀를, 강간하기 시작했다. (돈【손스】군은, 이제 와서 자신이 결정타(멈춤)에 들어가면, 자신도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간에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행위의 도중에 사망하고, D는, 평소 어머니와 부르고 있었던 그녀의 전신을 분별 없음 찌르기에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내장을 질질 끌기 시작해서 흩뿌렸다. 가즈오(和夫)에게는, 한사람이 어린 딸이 있었다. 평소 모범적이어서 착한 아이이었던 【히미코】씨는, 방과후, 집에 돌아가 와서, 양친의 몸에 일어난 참상을 보고, 기분이 상해버렸다. 【히미코】가 몇일동안도 통곡하는 목소리에, 이웃주민들은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고아가 된 【히미코】는, 음식물을 바라자고, 그 부근을 방황했지만, 조선인은 모르는 모습을 했다. 결국, 그녀는 9일후, 마을의 다리 아래에서 바짝 마른 사체가 되어서 발견되었다. 당시, 【히미코】는 초등학교 6학년의 어린 아이이었다. 돈完燮(김·【완소푸】)은, 방일한 때, 일한 관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 정부에 대하여, 반일교육을 중단하게 강하게 요구 해야 하다. 한국인은, 하나, 두개상의 세대의 일본인이, 조선을 위해서 쏟은 땀과 노력,그리고 봉사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컨대, 일본인이 메이지(明治)부터 종전 때까지, 한반도(朝鮮半島)에서 무엇을 한 것인가, 빈틈없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김·【완소푸】씨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반일교육을 멈추게, 강하게 요구해라라고 말하고 있다.

nanako180
質問者

お礼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感謝します。少しでもキム・ワンソプさんの思いを伝えて行きたいと思います。